영화

조커 Joker 2019

(주)CKBcorp., 2019. 10. 1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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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도의 순간. 자유를 얻다.

 

한줄평가 : 나락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남자가 득도해서 오늘만 사는 악마가 된다. 

참고 : 우울증 약을 복용중인 사람은, 이 영화를 보지 말것을 권한다. 궁서체. 

 

 

 

 

들어가보자. ;  (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영화는, 좌절의 끝에서 사람이 어떻게 미쳐돌아가는가를 보여준다. 근데 이게 좀... 이전의 전통적인 영화와는 이야기가 다르다. 

 

주인공의 인생은 시궁창이다. 그 시궁창이 다른 판타지 영화에서나 나오는 비현실적인 시궁창이 아니라, 우리 중 누구라도 겪고 있을 수 있는 현실적인 시궁창이다. 생명의 위협이나, 초자연적인 악마나 하이테크기계 병기가 쫓아온다거나, 좀비라거나...이런거 아니다. 일터에서는 깡패한테 당하고, 회사에서는 직장 상사 동료들에게 당하고, 돈은 없어서 홀어머니 집에 빌붙어 살고, 어머니는 맛이 갔고, 본인은 기댈곳이 어디에도 없고, 정신병때문에 현실과 착각을 구별하기 어렵고, 자신의 신체는 발작을 제어할 수 없다.

 

 

이런 인생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적 전략은 무엇인가.

영화에서 주인공 아서가 쓴 메모 중 이런 토막글이 나온다. "정신병자의 가장 어려운 점은, 보통 사람들을 만났을 때 정신병자가 아닌 척 해야 한다는 거다.

 

 

만약 당신이, 나락에 떨어졌다고 생각해 보자.

지옥이라고 생각한 곳에 떨어졌는데, 끝이 없다. 밑바닥까지 떨어졌는데 지하가 더 있고, 더 밑으로 떨어지고, 더 더 밑으로 떨어지고.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적 전략은 무엇일까?

과연 살아남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전략을 세울 수는 있을까?

 

누군가는 자신을 살해해서 현재 환경에서 탈출을 선택할 거다. 

누군가는 미쳐서 정신줄을 놓을 수도 있다. 해리성 인격 장애 같은거.

어쩌면 살아있는 시체가 될 수도 있다. 욕구를 지우고 완전히 수동적인 삶이 되는 것. 아무리 개선하려 해도 개선이 안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혹은 반대로 증오와 분노만을 끝까지 키워서, 폭력만을 휘두르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은 , 이 모든걸 다 넘어섰다. 

그는, "깨달음" 을 얻었다.

그는 깨달았다. 현실을 개선하려 하는 것이 효율적인 전략이 아니라는 것. 적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는 그렇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얽매여 있었다는 것. 돈, 가족, 사랑, 꿈, 사회적 지위. 

그는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려는 것이 자신이 집착일 뿐이고, 부질없다는 것. 적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는 그렇다.

그는, 득도했다. 

 

 

그리고, 그 깨달음대로 몸을 맡기고 흘러가기 시작한다.

현재에, 자신의 기분에 최선을 다한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 알고 있던 가치관은 무시한다, 날려버린다. 

 

 

그러자, 지옥 밑바닥이었던 삶이, 아름답게 변한다.

환경은 변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자신의 마음이 바뀌자, 동일한 환경이 아름다운 세상으로 바뀌어 보인다.

시위대에 의해 파괴되고 폭력이 난무하는 길거리를 보면서, 주인공은 이야기한다. "참 아름다운 세상이야."

그는 깨닫는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환경에, 돈에, 가족에, 사랑에 족쇠에 묶여 살고 있었구나. 그들도 족쇠를 벗어던지고 해탈을 얻고 있구나. 자신의 기분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고 있구나. 괴로움을 지우고 있구나. 괴로움을 지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다니, 현재의 기분에 최선을 다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니. 참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이 영화를 보고, 몇가지 느끼는 게 있다.

 

1.  어느정도 나락으로 떨어져 보지 않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 혹은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할 필요 없이 살았던 사람들. 나락까지 떨어져 보지 않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어디까지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2. 미국에서 이거 상영금지 이야기 나온 거, 충분히 이해된다. 

이게, 단순히 "악을 미화했다" 수준이 아니다.

해탈을 다른 방향으로 했을 때 나올 수 있는 경우에 대해 영화가 이야기 해 버린 것이다. 이게 문제. 

물론 아서가 조커로, 범죄자가 영웅으로 대접받는 경우야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 가능성이 극히 낮은 ) 일이겠지만.

"왜 인생을 억압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죄어가면서 괴롭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이 본인에게 옳은 것인가? "  라는 생각은 끝없이 일어나게 만든다. 

100%는 아니지만, 영화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을테고, 특히나 미국에서는 그들이 주인공과 같은 선택을 충분히 할 수 있다. 총이 있거든. 구하기도 쉽고.

 

3. 총기규제는 신의 한 수. 

빈부격차와 사회불만이 쌓여가는 나라에서 총기규제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알 수 있다. 끔찍하다. 

 

4. 뒷감당을 할 수 있나?

조커는, 미쳐버린거다. 물론 주인공은 주인공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정신분열증이나 인지부족, 마약이나 술마시고 범죄 저지른 후 심신미약 주장. 뭐 이런거랑은 차원이 다르다. 

조커가 된 아서는, 뒤가 없다. 오늘만 사는 사람. 정확하게는 "지금" 만 사는 사람. 

근데, 이걸 주위 사람들이 본다면, 미친 사람이랑 뭐가 다를까? 

본인 자신은, 미친 게 아니고, 자신이 왜 이걸 하고 , 이러면 무슨 이익과 손해가 있을거라는 걸 알고 하고 있는거다. 뇌가 맛이 간 게 아니다. 

그런데 그 행위의 결과를 주위 사람들이 보면, 이건 미친놈이 하는 짓고 다를 게 없다. 

그럼, 이건 미친게 아닌가? 미쳤던 안미쳤던 결과가 같은데?

영화에서는, 영화적 우연을 거쳐서, 조커가 영웅이 되었지만, 현실에서도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정신적인 해방감은 느낄 수 있겠지만, 조직 전체에 손해를 끼치는 개별 인자는, 결국 제거되게 되어 있다. 

 

 

 

보고 나서도 우울한 느낌이 드는 영화다. 아름답지만, 슬프고, 무엇보다 위험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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