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지하철

(주)CKBcorp., 2012. 4. 27.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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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엔, 당황스러웠다니까.
가당키나 한 것인겨? 저 시커먼 터널에 사람이 떡 하니 서 있다는 게 말여. 
훈련 절차대로 했지.

물체 발견 후 정지.
손님들께 안내 방송 테잎을 틀고.
본부에 교신 및 확인.

처음엔 본부도 "비상 대응 메뉴얼"대로 확인해 줬는디... 매번 확인항께, 본부도 심드렁해졌당게? 나도 익숙해져 불고 말여. 
생각해 보소. 뭣담시 운행 시간에 터널 안에 사람이 있겄는가. 돈이라도 나온당가? 
글고말여. 밝은 곳서 어두운 곳 보면, 터널 윤곽이 흐릿허거덩? 근디 사람만 또렷이 보일 리도 없당게.
헌디, 기묘하게 사람만 또렷허야. 매번 같은 정거장. 같은 시간에 말여.

2.
처음... 네 번? 정도는 절차대로 확인을 혔지. 헌디 그 이후로는... 나도 미안시럽더라고. 센터에 확인도 한두 번이지. 안 그려? 그래서리 확인을 포기하기 시작했지. 익숙해졌기도 했고. 물론 삼십 오 톤짜리 쇠덩이가 선로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있는, 손을 흔들고 있는 걸 지나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쩔껴? 익숙해져야지. 애가 둘이고, 마누라에, 어머니도 계시당게? 여긴 내 직장이고, 계속 확인했다가는 미친놈이라고 짤렸을겨. 글고 밀어낸다고 죽는 거 아니잖여? 귀신이라면 이미 죽었을 텡게. 

근무 평점이 있으니, 아무 사람들에게나 떠벌릴 수는 없재.
술자리에서 남의 이야기인 척 팀 근무자인 서 기관사에게 물어봤지. 그쪽은 우스겟소리로 넘어가는디, 나랑 연배가 비슷한 장기수 기관사랑, 이현동 기관사가
그러는겨. 자기들도 몇 번 봤다고.
그소리에 오히려 서 기관사가 놀라더구만. 군대에서 탄약고 보초 설 때의 괴담같은 거 아니냐고.

내가 어쩌겄어? 다른 사람들도 가끔 보인다는데. 용한 한의원, 점쟁이 소개시켜 준다는 거, 마다하고 작파했지. 딸자식 학원 보낼 돈도 모자란데 점은 뭐고 한약은 또 무에여.

3.
그날도 어김없더라고. 6234호. 아홉시 근처. 
전차를 움직이는데, 앞에 사람이 있는겨.
확인? 아까 내가 한 말 못 들었는가? 늘상 있는 일이랑께?
사람이 손을 흔들고, 나는 발차하고, 지나가면서 사라지고... 일상 있던 일여. 다를 게 없었어.


없었어야 했다고!!


하필, 그 때... 그 때 정비를 해가지고...
김씨랑 접때도 같이 한 잔 했는데... 제수씨 얼굴을 어케 보누...


4.
"상황은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동료 기관사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증언의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겠죠.
...헌데... 한가지 확실히 할 게 있습니다. 과실치사 판정에 관계되니, 되도록 정확히 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기동 기관사님. 사건이 일어난 시각이 2011년 7월 28일 9시 30분경 양재역 맞죠?"

"...예."

" 그 시간엔 유래없는 기록적인 폭우가 갑자기 퍼부어, 양재역 일대는 전력 공급이 끊긴 상태였습니다. 정비팀도 전력 비상 복구를 위한 팀이었구요. "

"...?"

"도대체, 4~5백 톤짜리 전철을 어떻게 움직이신 겁니까? 정전 상태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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