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다시 공포물.

(주)CKBcorp., 2017. 2. 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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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기물을 쓰고 싶지 않았다.
공포물을 쓰고 싶지 않았다. 
고어물을 쓰고 싶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던가
갑자기 무서운 것들이 튀어나온다던가
팔다리가 부러지고, 근육이 짓뭉개지고, 
혀가 뽑히고 내장이 튀어나오고 뇌조직이 흘러나오고.


처음에는 재미있었다.


내가 쓴 글을 사람들이 읽는구나.
재미있어 해 주는구나.
댓글도, 좋아요도, 팬레터도 주는구나.
원고료도 받고, 편집자는 굽실거리고, 좋은 집도, 큰 차도, 술과 약과 여자도. 


이렇게 쓰면 더 재미있어 하겠지.
이렇게 비틀면 좋아요를, 댓글을 더 쓰겠지.
이렇게 뜯고, 부러뜨리고 갈라내고 터뜨리고 쥐어짜면 
모두들 더 열광하겠지. 
모두들 더 흥분하겠지.


안다. 사람들이 더 열광할 거라는 걸.


하다보니 알게 되었는 걸.
나의 열정이 그들의 광기. 그들의 광기가 나의 힘. 
우리들은 결국 서로 닮아가고 있다는 걸.


하지만. 지겨워졌어.
힘들어졌어.
괴로워졌다.


더이상 잔인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더이상 거북한 감정을 가지고 가고 싶지 않았다고.
장면을, 상황을, 희생자 고통을, 가해자의 심리를, 고통을, 비명을, 괴롭히는 즐거움을, 악행을 설계하는 치밀함을.
그리고 그 모든 걸 상상하고 묘사하고 기술하는 고통을. 감정을.


즐거운 걸 써 보려 했다.


밝은 걸 쓴다면 밝아질 줄 알았다.
웃고 싶었고, 즐겁고 싶었다.
하지만 주인공이 웃는 글이 즐거운 글쓰기는 아니었다.
글 속의 해피엔딩을 만들기 위해 난 여전히 괴로워하고, 고민하고 , 머리를 짜내고, 골몰하고 짜증내고 좌절했다.
더구나 무협지는 어려웠다. 환타지는 진부했다. SF는 이미 다 있었고, 로맨스는 너무나 어려웠다.
공포물과는 쓰는 법이 너무나 달랐다.
내가 아무리 심상을 잡고 쓴다고 해도, 손 가는 대로 쓴다고 해도, 주인공에 몰입해서 써봐도, 인위적인 가식적인 현실에 일어날 수 없는 환타지를 연애를 써 봐도.
사람들은 읽지 않았다. 비난했다. 부모님 안부를 물었다. 역사와 사실과 설정을 가열차게 까댔다.
내 해피앤딩 소설에서 행복해 진 건 주인공 뿐이었다. 
나도, 독자도, 출판사도, 편집자도 모두 즐거워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자신이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 이가 어디 나뿐이던가.
잘 하는 것을 하자. 최소한 주택 할부금은 낼 수 있잖아.


그래서, 난 오늘도 펜을 든다. 수첩을 챙긴다.
녹음기와 사진기와 테잎을 챙기고
손수건과 칼과 톱과 지사제, 마취제를 챙긴다.
공포를 다시 보고 싶지는 않지만
비명을 다시 듣고 싶지는 않지만
비릿한 피냄새, 썩은 창자 냄새는 역겹지만


잘 하는 것을 하자.
저사람이 앞으로 겪을 일을 알려주자.
이전 글에 서술된 사람들의 사진을 보여주자.
표정에서 공포를 읽자.
작업을 찍고, 비명을 녹음하자.
그리고 작업. 기록. 소설.
위협, 해체, 기술은 내가 잘하는 일이니까.
인류가 발명한 고문처형법은 수도 없이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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